지난 20일 발표된 G7 정상회의 공동성명 중 중국과 관련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공동성명은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다"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세부 영역에서는 중국에 대한 우려와 견제 메시지를 촘촘하게 담았습니다. 

위에서 인용된 부분은 경제 영역에서 G7의 대중 접근법이 정리된 부분인데요, G7 정상회의에서 대중 접근법으로 '디리스킹'이 제시된 건 처음입니다.

근데 디리스킹이 공동성명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수낵 영국 총리도 언급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킹)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은 경제 영역, 특히 공급망 문제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외교적인 접근에서도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서방국가의 대중 외교 기조가 될 듯합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서방 국가들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협을 논할 때 쓰는 표현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디커플링을 유럽이 왜 안 따를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흑백이 아니고 대응 역시 흑백일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라면서 '디리스킹'을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아주 조만간 (미중관계가) 해빙되는 걸 볼 것"이라고 했는데요, 올해 초 미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 정찰풍선을 미국이 격추한 이후 냉각된 미중관계가 풀릴 거라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중국 때리기와는 다른 발언이고, 미중관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디리스킹'을 언급했으니, 미국이 당분간 외교와 경제에서 중국을 대할 때 '디리스킹'이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디리스킹'이 대중국 외교 영역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된 것은 민주주의의 진영이 맞닥뜨린 도전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의 위험 행동을 방지하면서도 강압 위협이 충분히 줄어들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목표는 간단치 않기 때문이라는 거죠. 현실을 감안한 서방국가의 선택이 '디리스킹'인 셈입니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중국 입장에서는 차이가 있을까요? 중국에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듯합니다. 

중국 외교부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미중 관계 '해빙' 언급에 대해 제재 철회부터 하라고 맞섰습니다. 마오닝 대변인은 "중국과 미국은 필요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이 한편으로는 소통하자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국을 압박하며 제재를 가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소통이 어디에 있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어제(21일)는 중국이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면서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에 대해 이 회사 제품 구매를 중지하도록 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전방위 견제 내용을 담은 정상회의 공동성명 발표 다음 날 중국이 이런 제재를 발표했는데요, 미국에 대한 맞불 성격의 대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보는 듯합니다.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강력한 중국 견제의 내용이 담겨 있고, '디리스킹'이라는 용어도 중국의 위험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니 중국이 발끈하고 있는 거죠.

이런 중국의 반응은 '디리스킹'이라는 용어가 퍼질 때부터 나왔는데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말 논평에서 "디리스킹이 디커플링을 감추려는 것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 유지에 관한 불건전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니스트 알렉스 로는 "(서방의) 정책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까"라고 물으며 "아닐 것이다. 덜 호전적으로 들릴 뿐 근저에 있는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그대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미중의 패권 경쟁은 '디리스킹'이라는 용어 하나로 기류가 바뀔 수 없는 구도인데요, 다만 그런 구도 속에서도 서로 접점이 있는 분야의 외교적인 소통은 지금보다 다양해질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