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를 보냈고, 국민의힘 쪽에서는 일부 고성이 나왔습니다. 예정에 없는 발언이었던 만큼 여야 의원들의 반응도 거세게 표출됐습니다.

이 대표는 연설을 마친 뒤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기자들로부터 '왜 이 시점에 결단했나'라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정쟁이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하고 당이나 정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민생과 나라 살림을 챙겨야 할 때이기 때문에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이상 정쟁의 소재가 되지 않기 위해 특권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는 얘기인데요, 이 대표는 이 대목을 넣을지 말지 고심하다 연설 직전에야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승부수를 빼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입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SNS에 "나는 만류하고 반대했다. 그러나 윤석열 검사 독재 정권과 맨몸으로 맞서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라고 적었습니다.

'김은경 혁신위'가 가동된 상황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로 혁신 분위기를 띄우고 계파 분열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대외적으로는 사법 리스크로 옥죄는 윤석열 정부와 정면 승부하고, 당 내부적으로는 분열을 막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카드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사법 리스크가 낮아졌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도 많습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KBS 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검찰 수사를 겪으며 구속 가능성이 낮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의 선언이 3가지 이유로 의미 없다고 평가절하했는데요, 세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향후 청구되는 구속영장의 범죄사실은 상대적으로 약함'을 꼽았습니다. 즉, 지난 2월 구속영장 청구 사유는 대장동 비리, 성남FC 제3자 뇌물 등으로 큰 사건이지만, 앞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될 사건은 백현동 비리 정도로 작은 사건이라는 겁니다. 이 대표가 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계산을 하고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한 것으로 본 거죠.

각 당의 반응을 볼까요. 국민의힘은 "만시지탄", "몰염치의 극치"라고 비판했습니다. 김기현 당 대표는 "당 내부로부터의 퇴진압력, 사퇴를 요구하는 다수 국민 여론을 일시적으로나마 모면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어떻든 만시지탄"이라고 했는데요, 이 대표의 선언을 '꼼수'로 보는 듯합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SNS에 올린 글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시켜놓고 불체포 특권 포기하겠다니 참으로 재명스럽다"고 꼬집었습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겹겹이 방탄조끼를 입어 놓고서 사과 한마디 없이 큰 결단이라도 한 것처럼 이제 와 '구속영장이 오면 응하겠다'는 모습은 5분 신상 발언을 보는 듯한 몰염치 극치"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민주당은 모처럼 계파를 막론하고 후한 평가를 주고 있습니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SNS에 "이재명답다. 국민과 정의의 승리를 믿는다"라고 적었고, 역시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원이 의원은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과 홀로 온 몸을 던져 싸우겠다는 굳은 의지 표명"이라고 평했습니다.

대표적인 비명계인 이상민 의원은 '연합뉴스' 기자에게 "이 대표 때문에 민주당이 뒤집어쓰게 된 방탄 정당이라는 정치적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트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계파색이 옅은 김한정 의원은 SNS에 "'사이다 이재명'이 꽤 오랫동안 '사법리스크'와 '방탄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오늘의 반전이 당 쇄신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적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서 "좋은 이야기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적어도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 따라서, 그 절차 내에서 행동하겠다는 말씀은 기존에 하셨던 말씀보다는 좋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는 겁니다.

그동안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냈던 것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 장관은 다만 "그걸 어떻게 실천하실지는 잘 모르겠다"며 "중요한 건 대한민국의 다른 국민들과 똑같이 형사사법 시스템 내에서 자기방어를 하시면 되는 문제(라는 것)"라고 법 앞의 평등을 언급했습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수차례 공약했습니다. 지난해 2월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가 펴낸 공약집엔 '성범죄와 같은 중대범죄의 경우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추진'이라는 약속이 적혀 있습니다.

지난해 5월 6·1 지방선거 충북 지원 유세에서도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자는 것에 100% 동의한다. 처음부터 제가 주장하던 것이다. 10년 넘도록 먼지 털 듯이 털린, 저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월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구속영장 청구 방침이 알려지면서 이 대표는 이전의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을 번복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대표는 1월 "경찰복을 입고 강도 행각을 벌이고 있다면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판단은 다를 수 있다"(신년 기자회견), "우리나라 상황이 이렇게까지 과거로 퇴행할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KBS 뉴스9 인터뷰)고 했는데요, 상황이 바뀌었다는 점을 번복 이유로 들었습니다.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오늘 재선언이 평가를 못 받는 측면이 있습니다. 불체포 특권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돈 봉투 의혹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이 선언이 나왔더라면, 진즉에 대선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굴 수 없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도 "오늘 약속을 계기로 국회의원의 특권이 하나둘 사라지고 우리 국회가 방탄 의혹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는데요, 이재명 대표 연설로 불체포 특권 폐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