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교사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사망 소식에 교권 추락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겁니다. 추모 화환이 초등학교뿐 아니라 교육청과 교육부에 배달되고 있는데요, 교육 당국을 향한 분노의 뜻도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또, 교사 단체들은 성향을 떠나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가 다니던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 앞에 추모 화환이 늘어섰습니다.

새벽부터 화환이 도착해 등교 시간에는 담장을 둘렀습니다 아이들은 화환을 지나 등교해야 했습니다. 화환에는 '선생님 부디 편안해지시길 바랍니다', '진상규명을 촉구한다'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교문은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으로 채워졌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교육 현장에서 세상을 등진 선생님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 봅니다', '그곳에서는 괴롭히는 사람도, 아픔도 없이 모두 잊고 평안히 행복하세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등 저마다 추모 마음을 포스트잇에 남겼습니다.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 메시지에는 꽃다운 나이에, 부푼 꿈을 꾸었던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슬픔을 억누르며 쓴 글귀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억울함, 고통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주세요’라며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 '끝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는 결연한 의지도 포스트잇에 남았습니다. 추모와 분노가 녹아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학교 앞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추모행렬이 이어지면서 국화꽃이 더 쌓여가고 추모의 글을 적은 포스트잇은 더 빼곡해졌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사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들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면서 기자회견과 추모제 등을 열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소속 단체를 가리지 않고 같은 입장으로 집단행동에 나서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또 추모 화환이 교육청과 교육부도 에워싸고 있는데요, 교육 당국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숨진 교사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는 수사 중입니다.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렸는지, 교권 추락과 관련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학교 측이 입장문을 냈는데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숨진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고, 학급에 유력 정치인 가족이 있지도 않다고 밝혔습니다.

숨진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해 힘들어 했다거나, 학급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안 등으로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거나, 유력 정치인 등의  자녀 또는 손자녀가 이번 사건에 연관돼 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는데요, 다만 진상 규명할 때 학교라는 장소에서 극단적 선택한 점을 주목해 종합적이고 심도 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범죄 수사처럼 이번 사안을 다뤄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 겁니다.

교육부와 당국은 이 사안에 대해 몇 가지 증거 수집만으로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종합적 판단을 통해 교사가 학교라는 장소에서 극단적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추적을 요구합니다.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

인터넷에 떠돌던 일부 의혹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는데요, 그런데도 교사와 교사 단체들은 들끓고 있습니다. 

교사의 극단적 선택 원인이 무엇인지와 별개로 실제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교사 사망 소식에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앞서 지난달 30일 초등학교 6학년생이 담임교사를 폭행한 사건도 교사들의 분노 지수를 높였습니다. 

교사들은 교육현장의 악성 민원이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데요, 초등학교 평교사 출신인 정성국 교총 회장도 "학부모와의 상담·민원을 담임이 모두 감당하는 구조에서 교사들은 '우리 반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일부 학부모는 불리해지면 태도가 돌변해 협박이나 괴롭힘을 가하는 일들이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고 현장 실태를 전했습니다.

교사들의 개인 전화번호 공개를 제한할 필요성에 대해 다시 언급되고 있는데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SNS 글에서 학부모와 교사의 사적 소통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대안이 뜬구름 잡는 소리여서는 안 된다"면서 "학부모가 선생님들에게 개인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금지하고 학교 차원에서 상담교사나 교직원을 통해서, 아니면 여러 명이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만 소통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세계일보가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공동으로 고교 교사 8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교육활동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2개 선택)으로 '교권약화로 학생 지도 한계'(83.9%), '수업 외 업무 과중'(65.3%),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23.4%)을 꼽았습니다. 

'교권 약화로 학생지도 한계'와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은 연결돼 있는데요, 한국교총은 "괜히 적극 지도했다가는 무차별적인 항의, 악성 민원, 아동학대 신고만 당하는 무기력한 교권이 교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등 아동학대방지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은 현장 교사들이 많이 지적하는 문제입니다. 젊은 교사들 사이에서 교직은 '극한직업'이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사 사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교총이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교직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3.6%,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20.0%에 그쳤는데요, 조사 시작 이후 최저치라고 합니다.

어느 교사는 '연합뉴스'에 "교권이 바닥을 치다 못해 바닥을 뚫고 들어간 상황"이라고 인터뷰했는데요, 현실을 적나라하게 진단한 표현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