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죠. 정치인 가운데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 말을 즐겨 쓰는데요, '폭우 중 골프'에 대한 비판에 응수하면서 그제(17일)도 썼습니다. 그러던 홍 시장도 결국 고개를 숙였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시청 기자실을 찾아 고개를 숙이고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읽었습니다.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은 없었습니다.

입장문에는 '폭우 중 주말골프' 논란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공식 사과한 겁니다.

우선 홍시장은 "주말 일정이고 재난 대응 매뉴얼에 위배되는 일도 없었지만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해명 과정에서 국민 감정을 더 자극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원칙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또한 원칙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수해로 상처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홍 시장이 "부적절했다는 지적 겸허히 받아들인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사과드린다"는 표현으로 국민과 당원들에게 머리숙였는데요, 그렇다고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는 건 아닙니다.

홍 시장은 사과에 앞서 '당시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총괄 관리하고 있었다,' '신천 물놀이장 개장식도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개장식을 마친 뒤 한 시간가량 운동하고 중간에 비가 와서 돌아왔다'고 지난 15일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주말 일정이고 재난대응 매뉴얼에 위배되는 일도 없었다"는 말을 다시 하면서 골프 친 행위 자체는 잘못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홍 시장이 사과하는 모습은 이례적입니다. 호통치거나 사이다 발언을 하는 모습이 익숙하죠.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들끓고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도 진상조사에 나서며 분위기가 강경해지자 사과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과하면서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했는데요, 그만큼 여론이 싸늘해진 걸 체감한 듯합니다. 

홍 시장 스스로 채널A 기자에게 "국민 여론과 싸우는 모습보다는 내가 굴복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사과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 홍 시장은 "주말에 테니스 치면 되고 골프 치면 안 된다는 그런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느냐", "대통령이라면 다르겠지만 그 외 공직자들의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다", "공무원들에게 비상근무를 지시한 적이 없다. 나는 끄떡 안 한다", "트집 잡지 말라"면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문제 제기에 대해 오히려 화를 내는 듯한 해명이 여론을 더 자극했는데요, 특히 지난 17일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 기자: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다는 지적에 동의 못하시나요? 
▶ 홍준표 시장: 기자들 여러분들이나 눈높이 맞게 좀 질문하세요. 예? 이제 그게 어느 시대 법입니까? 주말에 공무원들이 자유스럽게 개인 활동하는 겁니다. 기자분들은 주말에 그럼 나오라고 하면 그냥 나옵니까? 관용차 얘기하는데, 개인활동 하는데 관용차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 차 있습니다. 어떻게 그걸 갖다가 꼭 권위주의 시대 정신으로 그런 식으로 그런 질문을 하세요. 
▷ 기자: 기자들은 공직자 아니지 않습니까?
▶ 홍준표 시장: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윤재옥 원내대표 면담 뒤 기자와 일문일답, 지난 17일

이를 두고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문제는 골프쳤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문제제기한 언론과 여론에 대해 막무가내로 버럭버럭 화를 낸다는 점"이라면서 "'골프친 게 잘못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수해로 가슴 아픈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나"고 공격했습니다.

이 지적에 수긍했는지 오늘(19일) 홍 시장의 사과 내용은 이 지적과 흡사한 데가 많습니다.

그동안 홍 시장이 보인 반응을 대표하는 표현으로는 "그래도 기차는 간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SNS에 올린 글에 이 표현이 있습니다.

일도 못하는 사람들이 입만 살아 가지고 걸핏하면 트집이나 잡고. 이제 그만 트집 잡아라.
그래도 기차는 간다.

홍준표 시장 SNS, 지난 17일

원래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간다)'인데요, '개가 짖어도'는 빠졌네요. 아마도 국민을 개에 비유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뺀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 그런 비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개혁에는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기에 묵묵히 나의 길을 갑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듯이 나는 나의 길을 갑니다.

홍준표 시장 SNS, 2013년 12월

지난 2013년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가 취임 1주년을 맞아 SNS에 위의 글을 올렸는데요, 당시에는 진주의료원 폐쇄가 논란이었습니다. 진주의료원 폐쇄에 반대한 각계인사를 '개'에 비유했다는 논란이 꽤 컸습니다.

홍준표 당시 지사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도 개혁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취지의 은유법이지 국민이나 정부를 개에 비유하는 직유법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쉽게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간다)'는 말이 국내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군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에 나서자 군부가 "무신의 난이 왜 일어난 줄 아는가"라며 반발했다고 합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은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고 일갈하면서 하나회 척결을 밀어붙였습니다. 소신과 뚝심, 추진력이 말 한마디에 담긴 겁니다.  

이후 이 말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홍준표 시장인데요, 홍 시장은 반대를 뚫고 정면돌파할 때 이 말을 즐겨 썼습니다. 

이번 홍 시장의 입장 변화와 관련해서 또 하나 짚어볼 게 있습니다. 정치인의 공감 능력에 대한 겁니다.

홍 시장은 어제까지만해도 이른바 '국민정서법'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골프를 이용해서 국민정서법을 빌려 비난 하는건 어쩔수 없지만, 아직도 국민정서법에 기대어 정치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라고 SNS에 적었습니다. 

폭우 피해자들, 또는 국민이 비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주말 골프 치는 시장님을 어떻게 생각할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국민이 어려울 때 정치가 필요한 것인데, 그걸 외면하고 공감력 '제로'의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역풍은 강했습니다. 끝내 홍 시장은 머리를 숙이며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국민정서법에 기대어 정치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하루 사이에 무너진 겁니다.

선거 때 표를 받아야 하는 게 정치인들인데, 공감 능력 없으면 표를 받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