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어제(22일))
"대통령님에 대해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오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어제까지만해도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사실을 공개하면서 윤 대통령과의 충돌을 숨기지 않았는데요, 오늘은 180도 다른 말을 했습니다. 

충남 서천의 화재 현장을 함께 둘러보고, 함께 열차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등 대화의 시간을 가지면서 당정 갈등이 전격적으로 봉합되는 국면으로 들어선 겁니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 출구 전략도 세운 걸까요?     

충남 서천특화시장에 어젯밤 큰불이 발생해 점포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했는데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오후에 화재 현장을 찾았습니다. 

한 위원장은 현장을 둘러 보고 윤석열 대통령이 오기를 기다렸는데요, 일정이 겹쳐 만남 일정까지 잡혀 있었습니다.  

기온이 영하 6도에 머무른데다 눈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였는데요, 한 위원장은 시장 어귀에서 15분가량 기다렸습니다. 윤 대통령은 남색 패딩 점퍼 차림으로 도착했는데요, 이 패딩 점퍼는 7년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 수사 때 즐겨 입었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은 당시 특검팀 수사팀장이었고, 한 위원장은 수사팀원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악수한 뒤 어깨를 툭 치며 친근감을 표했습니다.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 가깝게 깊이 숙여 인사한 뒤 웃으며 윤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여기가 오다 보니까 장동혁 의원 지역구더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사진으로는 당정 충돌의 모습을 볼 수 없는데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공식 대면한 건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 이후 20일 만입니다.  

한 위원장이 정치에 뛰어든 이후 대통령실과 거리두기를 해왔는데요, 특히 지난 17일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언급하고 김건희 연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국민들이 걱정할만한 부분이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갈등이 증폭됐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천 화재 현장을 함께 찾아 살펴보면서 이런 갈등은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각자 다른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는데요, 서울로 올라올 때는 대통령 전용 열차를 함께 탔습니다. 

윤 대통령이 먼저 한 위원장을 비롯한 당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상경할 사람들은 함께 타고 가자'고 권하면서 두 사람이 길게 대화하는 시간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 위원장은 서울역에 도착한 뒤 "여러 가지 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길게 나눴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갈등이 봉합된 것으로 보면 되는지'에 대해 한 위원장은 "저는 대통령님에 대해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게 변함이 전혀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답변한 것을 보면 갈등이 모두 해소된 것처럼 보입니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관련한 갈등이나 김경율 비대위원 사퇴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는 서로 없었다"면서 말을 아꼈습니다. 특히 김경율 비대위원 사퇴와 관련해서는 "그런 얘기를 서로 만나서, 대통령님 뵙고 하지는 않죠. 서로"라면서 대통령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한 위원장은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4월 10일에 국민의 선택을 받고 이 나라와 우리 국민을 더 잘 살게 하는 길을 가고 싶다"고 다짐하는 말을 하고 기자들과 헤어졌는데요, 갈등이 해소됐으니 총선 승리에 매진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여당 수장이 화재 현장을 방문하고도 정작 피해자 위로 등 민생 소통이 부족했고, 화재 현장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명절을 앞두고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 여러분들이 바로 영업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지원해 드리겠다"고 위로했지만, 로비 1층에서 서천군 의회 의회의장과 상인 대표들만 만났습니다. 상인들과 면담은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화재 피해를 본 서천특화시장 일부 상인들은 "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정작 피해 상인들에게 한 마디 위로나 어떠한 발언도 없이 사진만 찍고 갔다"며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민주당이 이런 상황을 비판하고 나선 건데요, 강선우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아무리 윤석열·한동훈 '브로맨스 화해쇼'가 급했다지만,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된 시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을 배경으로 삼을 생각을 하나"라고 직격했습니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SNS를 통해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김승원 민주당 법률위원장도 "(윤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던 상인 200여 명을 만나지 않고 갔다고 한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고통을 나누어지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 의무이자 정치의 시작일 것"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경찰 측은 현장이 어수선하고 동선이 복잡해 안전상의 이유로 윤 대통령과 상인 면담이 취소됐다고 밝혔습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피해 상인들을 만나 위로를 전하고 생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차별화 행보를 보였습니다.

당정 갈등은 빠르게 봉합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여권 인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등을 토대로 이번 갈등이 '약속대련'이라고 규정해왔는데요, 여권의 내막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 대표는 갈등이 더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대표는 SBS '스브스프리미엄'(스프) 콘텐츠 '정치컨설팅 스토브리그'에 출연해 "1차전은 한 위원장의 우세승으로 끝날 것이고, 2차·3차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이 의중을 접어주고 한 위원장이 이득을 보는 시나리오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이건 예고된 대련의 방식"이라고 거듭 밝혔는데요, 일단 한동훈 위원장이 승리하는 양상으로 이번 갈등 국면은 마무리될 것이라는 게 이 대표의 분석입니다. 

한 위원장의 승리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갈등이 봉합되는 모습이 연출됐는데요, 갈등의 핵심 요인이었던 김건희 여사 리스크의 출구 전략 시나리오가 있는지 등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2·3차전까지 기획됐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건 모르겠다"면서도 "싸우다 보면 진심으로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주전장(주된 싸움터)은 공천관리위원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공천을 두고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의 기싸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겁니다. 

공천도 공천이지만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의 해법을 두고 양측이 통일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할 경우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