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오늘(7일) 불러 조사했는데요, 지난 4일 호주 대사로 임명된 지 사흘 만입니다. 또 출국 금지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 지는 하루 만입니다. 

이 전 장관이 호주 대사로 부임하기 전에 조사를 서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관련자부터 소환하고 '윗선'을 부르는 이른바 '상향식' 조사 절차와 달리 '윗선'인 이 전 장관부터 조사한 겁니다.

공수처는 당초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된 사건이 국방부 검찰단에 회수·재검토되는 과정에 관여했는지 이 전 장관에게 물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장관으로서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 수사단 수사 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랐습니다.

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출국 금지돼 있는데요, 출국 금지된 상태에서 지난 4일 주호주대사에 임명됐습니다. 

공수처는 "오늘(7일) 조사에서 주요 사안에 대해 1차 조사는 마쳤다"고 전했습니다. 이 전 장관은 앞으로 진행될 수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공수처에 밝혔다고 합니다.

이 전 장관이 소환조사를 받았고, 앞으로도 수사에 협조하기로 했으니까 호주 대사 부임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수처는 다만 "출국 금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결정 기관이 아니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결정은 법무부가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전 장관이 출국 금지된 게 지난 1월이고,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게 지난 4일이니까 출국 금지된 걸 알면서 대사 임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출국 금지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출국 금지든 뭐든 간에 공수처 수사 상황에 대해서는 일절 알 수 있는 바가 없다"며 "특히 출국 금지는 본인조차도 대부분의 경우 출국하려고 공항에 갔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본인에게도 고지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실이나 대통령이 공수처 수사 상황에 관해 물을 수도 없고 답해주지도 않는, 법적으로 금지된 사항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출국 금지는 당사자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사상의 비밀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실도 알지 못했다고 설명한 겁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지난 1월 이종섭 전 장관 등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공수처가 국방부 조사본부와 검찰단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강제 수사에 나설 때였는데요, 압수수색에 앞서 출국 금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 장관뿐 아니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김동혁 검찰단장,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도 출국 금지 대상에 포함됐다고 MBC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외교부 브리핑에서도 기자들이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과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는데요,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습니다.

'출국 금지된 상황에서 외국 대사로 부임하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임 대변인은 "이종섭 대사에 대한 출국 금지 조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수사상의 비밀"이라며 "이와 관련해서 외교부 차원에서 별도로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고만 답했습니다. 

또 '이종섭 전 장관 인사검증 당시 (출국금지 여부를) 인지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인사 검증은 외교부 소관 사항이 아니다. 유관 부서(부처)에 문의해달라"며 질문을 피해갔습니다.

부임 일자도 "관례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이종섭 내정자가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은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통상 관례에 따라 인사 발령이 나면 신임 공관장이 외교관 여권을 신청하게 돼 있고 그에 따라 외교관 여권을 발급한다"며 "(이 내정자는) 여권법상 외교관 여권 발급에 대한 행정 제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권법에는 장기 2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로 기소된 사람 등에게 여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고만 돼 있습니다.

대통령실이 인사검증 단계에서 이 전 장관의 출국 금지 사실을 몰랐다고 했지만, 이 부분이 정치적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미 출국 금지돼 있다면 인사 검증 과정에서 모를 수가 없다"며 "이를 알고도 대사로 내보내는 것은 대통령 본인이 이번 해병대 장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의 몸통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범죄 은닉 시도'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는 이런 점을 지적하며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민주당뿐 아니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녹색정의당 등 야권이 일제히 이 전 장관 대사 임명에 대한 비판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