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만난 홍준표 대구시장은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 '개판', '조리돌림' 등 거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대통령을 믿고 초선이나 원외 듣보잡들이 나서서 중진들 군기를 잡고 설치는 바람에 중진 역할이 없다", "대통령과 거리가 가깝다고 그 사람들이 설치는 바람에 당의 위계질서가 다 깨지고 개판이 되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 같은 경우에는 얼마나 많은 듣보잡들이 나서서 조리돌림을 했나" 등 당을 향한 비판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홍 시장은 '당의 본류'라는 자부심이 강한데요, 당내 목소리가 강한 친윤계 초선이나 당협위원장들에 대한 불만이 쌓인 듯합니다. 그러면서 이준석 전 대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의 신당설과 관련해서는 "이준석이 신당 만들면 김기현 대표(는) 먹잇감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이른바 '듣보잡'들로부터 당한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당의 원로인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는 겁니다. 

인 위원장은 "우리가 대통령의 얼굴이고 당의 얼굴이다. 그래서 우리가 책임감 있게 똑바로 해야 한다는 아픈 처방을 내렸다"며 "지금은 조금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혁신을) 안 할 수 없게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분위기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자, 홍 시장은 "듣보잡들 때문에 싫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만남 후반부에도 인 위원장이 "연말까지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냐"고 거듭 요청하자, 홍 시장은 "인 박사를 만나 말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만 답했습니다. 인요한 혁신위와는 거리를 두는 발언입니다.

면담 뒤 기자들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도 홍 시장은 "당무에 개입하지 말라고 김기현 대표가 상임고문도 해촉하고 징계도 했다. 그러니까 당무 개입 안 한다"면서 선을 그었습니다. 

홍 시장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언론이나 많은 사람이 '대통령은 권모술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고 했는데요, 다만 "대통령을 호가호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홍 시장은 "혁신위가 그런 세력들을 정리해달라"고 당부했고, 인 위원장은 "네. 명심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인 위원장은 어제(7일)는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당 쇄신 방향 등에 대해 조언을 구했는데요, 이 자리에서도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처방은 잘 했는데 환자가 그 약을 안 먹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말했는데요, '환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국민의힘이 환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강서 선거 결과 표심을 잘 인식해야 하는 데 아직도 인식이 잘못된 것 같다", "(혁신위의) 지금까지 처방은 약효가 잘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의 '환자' 비유는 최근 이준석 전 대표와 인요한 위원장이 진짜 '환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이견을 빚은 데서 나왔습니다. 인 위원장이 "마음 아픈 사람이 부산에 있고, 마음 아픈 사람이 환자"라고 하자 이 전 대표가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며 윤 대통령을 겨냥해 논란이 됐습니다.

인 위원장이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는 건 지난달 23일 취임 이후 이어진 '통합'·'경청' 행보의 일환입니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데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유승민 전 의원과도 만났습니다. 어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만났고, 오늘(8일)은 홍준표 대구시장과 회동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행사에도 참석했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와의 만남은 이 전 대표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 위원장이 많은 조언을 받았을텐데요, 이들 조언을 가려 실행하는 게 인 위원장의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혁신위원장이 아무리 전권을 받았다고 해도 권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위원장의 처방이 처방으로 그칠 수도 있는 거죠.        

이와 관련해 김종인 전 위원장은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위원장 권한에 한계가 있으니까, 그 위로 가면 당 대표, 거기다가 그 당에는 그 위에 가면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두 단계나 있다"면서 인 위원장에게 소신을 관철할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1호 안건이 처리된 이후 중진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문제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말을 아끼며 일제히 침묵하고 있는데요, 스스로 목에 칼을 대라는 요구에 머뭇거리는 거죠.

근데 인 위원장의 '통합'·'경청' 행보를 통해 듣는 쓴소리가 궁극적으로 당을 향하고 있어서 인 위원장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중진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문제의 경우 인 위원장이 잇따라 압박해도 별다른 호응이 없는데요, 김종인 전 위원장과 홍준표 시장이 거침없는 쓴소리를 통해 인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 지도부가 어떻게 수용할지, 기득권을 얼마나 내려놓을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요한 혁신위가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할지 등이 국민의힘의 내년 총선 전략과 직결될 것으로 보입니다.